Certain case歌词由演唱,出自专辑《Certain case》,下面是《Certain case》完整版歌词!
Certain case歌词完整版
Certain case - 장성우
词:장성우
曲:장성우
编曲:장성우
이 짓거리도
아홉번째네 벌써
그 동안 내가 살아있다는 게 장해
그래 장해
그래 잘했어 하고
내게 칭찬을 건네고
그래 뭐
나만이 알 수 있는 사정들에 대하야
스스로 칭찬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는 모두에게
잘 대해주어야 하는 것처럼
당신은 잘 대해주어야 한다네
당신은 존재하며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반듯이
반드시
두 눈 똑바로 치켜뜨시곤
바라보고 있을테니 말야
없는 인간인척
할 수 없다네
다 새겨진 바 되었고
다 태어난 바 되었기에
없는 인간
없는 인간
차라리 그러고 싶었던 적이
인생의 대부분이며
지금도 사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대가 존재한다는 건
누군가의 빛이 들었다는 말이고
누군가에게 빚졌다는 말이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라네
참 어려운 말이라네
삶이란
삶이란
말보다
꿈보다
그 어떤 것보다
참 살아내기 어려운 것이라
이것을 감당해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 자가 곧 바로 신이시겠지
신을 우리의 두 눈으로 볼 수 있겠는가
여러분과 신론에 대하야
토론을 해보자고
가삿말을 적을
메모장을 펼친 건 아니라네
그래
아홉번째
아홉번째
이런 말을 하고 있구나
내가 여태껏 낸 싱글의 수가
아홉 개라는 말은 아니고
칠월 십삼일에 적었던
비트
음악
음악의 줄기
음률의 줄기
트랙의 수가 열 두개고
개중에서 아홉번째 트랙 위에
가사를 적어 내고 있음을 말하는 바야
팔월 이천이십사년
팔월
그대는 무슨 일을 했는가
만화책을 봤는가
드라마를 봤는가
그래 그것도 좋지
나쁘지 않아
집에 가만히 앉아
쉬기라도 했는가
그래
그런 시간도 참으로
필요하지 진정으로
그대에게는 삶이란
삶이란 언제나 그대에게
문제를 내는 감독관과 같아
그대는 늘 그것에
답변을 해야하는데
생각보다 삶이란 기준을 정하고
문제를 내는 감독관에게는
너그러움이 있다네
그래서 그대는
그냥
아무 답이나 제출한다면
그 마음과 배짱을 받아
감독관은 언제나
고개를 끄덕여줄 것이야
내가 그리 살아봤으니
장담할 수 있는 문제이지
그러나
때로는 아무답이라도 내놓는 것마저
죽을만치 힘든 순간이 있는데
누구에게나
그건
그 자신이 간절하게 종말을 바라는
마지막을 바라는
죽음을 바라마지않는
뭐 그런 마음 상태이며
삶의 끝을 바라는 마음 상태일 것인데
그만치 힘든 이에게 위로가
대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위로가 닿겠는가
누구나 절대적 고독을 품고
또 살아가네 이 시절
이 시대 여러 삶이 이지러졌다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가
그래도 그대가 느낀 고독이
최초의 고독이 아니라는 것만이
그대가 지금도 빛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지점이라네
만일
그보다 더 극심한 고독을 겪었던 이가
없었더라면
인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지도 못했을 테야
그래 그럴 테야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만치 강하지가 않아서
스스로는 모든 역사를
만들어낼 수가 없거든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 지점을 자세히
잘 파고들어가다보면
비포어 크라이스트
그 지점을 만들어낸
인물의 마지막이 있겠지
교차 지점
가로 세로
죽 그은
누군가의 처형터
그것만이 그대의 쉴 곳이 되어준다지
누군가가 죽은 자리가
누군가에게 쉴 곳이 되어 준다는 게
어찌나
어찌나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
이게 무슨 말이지
하
하
하
말을 그만 하고 싶은 생각도
이미 조사가 분리되어버린
어설픈 말을 내뱉는 것도 다
그래
좋지
쉬고 싶다
포도당도 좀 필요하고
간절하게 그냥 쉬고 싶네 조용히
고요히
아무도 없는 적막감 속에서
잠시 말을 멎고
내면에 무슨 혼란이 있는지
고요하게 지켜본 뒤에
그것을 가만히 내어드리고 싶네
신이 있다면
신께
그래
그것만이 우리의 살 길일지
모르겠네
친구여
어둠 속을 방황하며 걷고 있는가
그대의 고독감이
홀로가 아닌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방구석에서
머리를 처박으며
쥐어뜯으며
죽겠노라고 씨름했던 당신을
칭찬 좀 해주길 바란다네
그래
그렇게 하루를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그저 하루를 견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고통도 세상은 시뮬레이션도
게임도
그런 것도
어설픈 포스트 모더니즘 속의
개 짖는 소리와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다 현실로서 존재하고 있지
그대의 고통도
분명 사실이며
그것들을 무시하는 이들은
보통 사기꾼들이겠지 그래
심지어 종교적인
이 기독교에서도 십자가
그 고통
그 처형터
그 죽음
부활했던
그 희생
그 대가
그 처연함
그 처절함
그 고독함
그 이겨냄
그 희생을 기억하라고 하니
그것이야말로
진하게 피부에 와닿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현실로 만드는
고통이자
현실감이자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대여